영화에는 주연과 조연, 다양한 등장인물이 있듯이 게임에서도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해 게이머의 몰입감을 높여줍니다. 특히, 대작이라 평가받는 게임은 영화 이상의 스토리와 캐릭터성으로 많은 게이머들에게 여전히 회자되는 대상이기도 합니다.작품 밖에는 기획자, 프로그래머, 일러스트레이터 등 게임이라는 세상을 탄생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개발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피땀 흘려 만든 게임은 게이머에게 때론 웃음을, 때론 눈물을 선사하며 일상의 피로를 잠시 잊게 만들어 줍니다.때론 주인공, 때론 친구, 때론 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부터 게임이라는 세상을 탄생시킨 개발자들까지 게임에 관련된 인물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했습니다.[편집자 주]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의를 외치는 영웅에서부터 고뇌에 찬 악역, 엉뚱한 개그 캐릭터까지. 그 모든 얼굴들 뒤엔 단 하나의 목소리가 있다. 바로 KBS 21기 공채 성우 강수진이다.
'원피스'의 루피, '명탐정 코난'의 남도일, ‘슬램덩크’의 강백호, ‘이누야샤’의 이누야샤 등 세대를 아우르는 명작 애니메이션 속에서 그는 언제나 중심에 있었다. 단순히 “좋은 목소리”로 설명할 수 없는 그만의 존재감은, 마이크 앞에서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순간마다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게임 분야에서도 스타크래프트의 '아르타니스', 창세기전의 '크리스티앙', 그랜드체이스의 '라스' 등 주요 배역을 맡으며 남부럽지 않은 경력과 커리어를 가지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더 많은 작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게임조선에서는 목소리로 세상을 그리며 팬들에게 보답하고 싶다는 강수진 성우에게 직접 연락하여 대면 인터뷰를 진행해봤다. 주조연이 중요하기보다는 그 역할이 크든 작든 그 작품속에서 기억에 남는 역할을 연기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데뷔한지 37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가 맡은 주요 배역들처럼 푸르른 청춘이 느껴질 정도인데, 엠투에스보이스아카데미에서 만난 그는 과연 어떤 종류의 향삼심을 마음에 품고 있었을까?
※ 본 인터뷰는 현장에서 진행된 분위기와 내용을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담화 형식으로 작성됐습니다

학원 사무실에는 그가 연기한 배역과 관련된 굿즈가 가득했다
기자: 뭐 워낙 유명하신 분이지만은 그래도 저희 게임조선을 통해서 접하는 분들을 위해서 좀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수진 성우: 보통 저를 소개해 주실 때 '몇 년 차 성우'를 비롯하여 수식어를 많이들 말씀하시는데, 이제는 굳이 몇 년 차인지 말씀 안 드리고 싶네요. 하하하
그냥 성우 생활한 지 꽤 됐고요. 게임, 애니메이션, 유튜브를 통해서 여러분께 인사드리고 소통하고 있는 성우 강수진입니다. 반갑습니다.
기자: 말씀해 주신 대로 꽤 오래 성우 일을 하고 계시면서도 여전히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신데요. 최근에는 어떤 배역들을 맡고 계신가요?
강수진 성우: 크게 변한 건 없고요. 기존에 오랫동안 해 왔던 애니메이션 IP들 '원피스'라든지 '명탐정 코난'이라든지 해당 작품을 계속 매해 매시즌마다 녹음하고 있습니다.
게임도 몇 개씩 신작 녹음을 하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아주 왕성하지는 않지만, 팬분들과 때때로 소통도 하고 제가 이제 오디오 컨텐츠 제작하는 일도 하고 있어서 그런 방면으로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기자: 사실 예전에는 TV에서 목소리만 들을 수 있는 분이었는데 최근에는 아까 말해주신 유튜브 콘텐츠도 나오시고 아니면 서브컬쳐 같은 행사에 출연하셔서 팬들이랑 직접 소통을 해주고 그러다 보니 이전보다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시는 느낌이 있어요. 비결 같은 게 있을까요?
강수진 성우: 비결이라고 하기보다는 제가 의도하고 움직이는 바도 있겠지만, 그만큼 미디어 환경이 많이 바뀐 것의 영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우들이 예전에 활동했던 영역은 이제 TV를 통해서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에서 더빙만을 담당하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직업이었는데, 이 목소리로만 활동을 하는 직업의 특성 '신비함'이 장점이자 동시에 약점으로 작용하는 환경으로 바뀐 것 같아요.
물론 그 약점만을 타파하고자 미디어 활동을 하는 건 아니에요. 바뀐 환경에 적응을 하는 것과 별개로 성우들을 좋아하시는 분들의 니즈가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들을 많이 요구하시는 것도 있고, 그래서 저도 용기를 내서 다양한 미디어 활동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용기를 내서'가 중요합니다.
만약 제가 외모가 출중하다든지 개성이 넘치는 페이스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그 매력을 비결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함에도 좋아해 주시는 팬들이 계시니까 말이죠.

아무튼 용기가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다
기자: 뭔가 강수진 성우님이 '용기'를 강조하니까 용기를 강조하는 대표 캐릭터들 때문에 뼈가 있는 말씀처럼 느껴지긴 하네요.
사실 말씀해주신 부분과 일맥상통하는 질문이 있어요. 서브컬쳐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성우라는 직업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있잖아요.
예전에는 목소리로 연기만 하는 사람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가수도 하고 방송인으로도 활동하고 부캐도 있고 해서 엔터테이너에 가깝다는 느낌이거든요. 특히 게임 방면의 커리어가 많이 주목받고 있는데, 이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강수진 성우: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성우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공중파 미디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가 새로 개발되고 또 소비자들이 이를 많이 소비하면서 미디어가 다양해지면 다양해지는 그 미디어마다 성우들의 롤(역할)이 새로 창출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뉴미디어 세대들은 또 새로운 니즈들을 가지고 있어서 거기에 맞춰서 성우들이 활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목소리 연기자뿐만 아니라 서브컬쳐 엔터테이너로서의 활약을 해나가야 하는 시기라고 봅니다.
저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에 불과하고 저보다 더욱 많은 활약을 보여주는 후배들이 있는데, 아마도 게임 시장이 크게 성장한 것의 영향을 어느정도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기자: 사실 저희처럼 게임 관련 전문 매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게임들을 접해오다 보니 창세기전의 '하이델룬'과 '크리스티앙', 그랜드체이스의 '라스'처럼 예전부터 줄곧 게임 분야에서 활발하게 목소리 연기를 한 것을 인지하고 있는데요. 그 시기에는 보통 어떤 방식으로 캐스팅이 이뤄진 것인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강수진 성우: 제가 당시에도 애니메이션 녹음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었는데, 게임사 측이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저의 인지도라든지 또는 개성을 좋게 생각해 주신 것도 있고 게임 시장이 아케이드에서 PC로 그리고 PC에서 콘솔로 넘어가면서 게임에 세계관이라는 게 생기고 스토리와 내러티브가 강화되면서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성우들의 역할을 많이 필요로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게임의 세계관과 애니메이션의 세계관을 들여다보면 흡사한 경우가 많잖아요. 그러니까 애니메이션에서 활동을 많이 하고 있던 제가 게임에서도 많은 활약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실제로 게임에서 제가 했던 역할과 애니메이션에서 제가 했던 역할들이 대체로 성격들이 비슷했던 것도 있고요.
기자: 성우분들은 배역을 연기하기 전에 보통 자체적으로 캐릭터에 대한 해석과 연구를 진행하시잖아요? 물론 녹음 현장에서 PD분들의 리딩에 따라 어느 정도 달라지는 부분은 있겠지만 이런 자체 연구를 위해서 게임을 평소에도 많이 플레이하시는 편인가요?
강수진 성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되게 조심스럽기도 하고, 특히 저를 좋아하시는 팬 여러분들 중에 게임 좋아하시는 유저분들에게 개인적으로 좀 빚진 마음이 좀 있어요. 제가 게임 IP를 많이 작업하긴 했습니다만, 실질적으로 제가 그렇게 게임을 많이 플레이하지는 않거든요.
'게임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좀 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 '게임 세계관 속의 스토리와 내러티브, 게임을 플레이하고 진행하면서 확장되고 발전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나중에 원신 출연하시면 이번 인터뷰의 지분도 있는걸로...
기자: 방금 말씀드린 내용과 좀 연계되는 것 같은데요. 사실 이번 인터뷰를 요청한 결정적인 계기이기도 합니다. 다른 서브컬쳐 행사나 유튜브 합방에서 '원신'에 출연하고 싶다고 콕 집어서 어필을 좀 하신 모습을 기억해요.
사실 '원신'이 방금 말하신 내러티브를 중심으로 하는 대표적인 게임 타이틀이잖아요? '원신'에 출연하고 싶다고 생각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 같은 게 있었을까요?
강수진 성우: 특별한 계기까지는 아니고 농담조에 가깝긴 했는데요. '원신'이라는 게임이 대한민국 거의 대부분의 성우들이 출연하고 활약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그를 통해 후배 성우들이 팬덤을 확장시켜나가고 그런 모습이 선배로서 조금 부러워서 우스갯소리를 농담을 좀 했던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약 700명 가까이 되는 성우들의 3분의 2 이상이 출연하고 있는데 섭외도 없고 오디션도 없다 보니 조금 섭한 마음이 있었죠. 하하하
기자: 사실 저 또한 기자라는 직함 이전에 덕후다 보니 그런 뇌피셜을 굴려봤거든요. 실제로 원신 출연하는 성우분들 중에 '명탐정 코난'에서 핵심 배역을 맡고 계신 분들이 많잖아요? 다들 감우(코난 역 '김선혜' 성우님), 신학(유미란 역 '이현진' 성우님), 모나(홍장미 역 '우정신' 성우님)를 맡고 있다 보니 친한 성우분들끼리 서로 살짝 놀리는 상황이 있었나 싶었거든요.
그럼 혹시 아까 말씀하신 '원신'이 아니더라도 '어, 나 이 게임 꼭 출연해보고 싶은데?'라고 점찍어둔 타이틀 같은 게 있었을까요?
강수진 성우: 요즘엔 '니카'인가요?
기자: '니케' 말씀이시군요. '승리의 여신: 니케'
강수진 성우: 네 지금 한참 인기인 남성향 게임이죠. 거기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너무 예뻐서, 그 예쁜 캐릭터들 사이에 마성의 남캐가 하나쯤 등장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웃음)
기자: 확실히 지휘관 역할로 이제 중간에 난입하는 멋진 남성 캐릭터가 또 하나쯤 있었으면 했긴 하죠, 니케 같은 경우에는 2주마다 업데이트 되니까 언제든 기회만 된다면 난입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럼 지금까지 출연했었던 게임 관련 커리어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배역'은 무엇이 있었을까요?
강수진 성우: 게임 캐릭터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들은 여러가지가 있는데요. 아직까지도 많이들 사랑해주시는 스토리 게임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창세기전', 창세기전은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잖아요? 장례식까지 지냈다가 다시 부활하고 올라오는 중인데 거기 나오는 '크리스티앙'이라는 캐릭터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기억에 남아요.
당시에 제가 접했던 다른 게임들의 일러스트와 비교하면 창세기전의 게임 캐릭터 일러스트는 굉장히 독특했어요. 그렇지만 너무 매력적이었고 또 성격과 서사도 괜찮은 친구였고 그래서 열심히 연기했던 기억이 나고 최근에도 다시 녹음할 일이 있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게임 캐릭터 중에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임 캐릭터는 여성형 게임인 '수상한 메신저'의 '레이'라는 캐릭터가 있는데요. 이 게임이 인디게임이긴 합니다만 북미, 대만, 브라질에서 굉장히 히트를 해서 2018년도에 미국 동부 오타콘이라는 굉장히 큰 컨벤션 행사에 초청을 받게 됐거든요.

실제로 오타콘 홈페이지에서 게스트 참여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행사를 경험하면서 '대중문화 방면에서 K-Wave가 전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데, 지금까지 성우 관련 콘텐츠만 큰 활약을 하지 못 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물론 서브컬쳐와 뭐 메이저컬쳐라는 방면에서 영향력 차이도 있긴 하겠습니다만, 국내 IP 기반 서브컬쳐가 그만큼 잘 만들어지고 지속적으로 인기를 얻는다면 한국어로 더빙을 하며 일을 하는 우리 성우들도 일본 성우들처럼 시장을 확장해나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걸 실제로 경험하고 오며 이전보다 더 큰 관심을 갖게 됐죠.
'한류 성우'라는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면서 지금은 성우 지망생들에게도 그런 부분에 신경을 쓸 수 있도록 제가 이제 계도하고 일깨워주는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기자: 사실 아까 인디게임 이야기하시니까 저도 좀 찾은 게 있었거든요. 예전에 이제 '대인배들'이라는 인디게임 제작사에서 만든 '어이쿠, 왕자님' 관련해서 강수진 성우님이 직접 개발진에게 연락해서 '이거 드라마 CD 만들고 싶다'고 먼저 제안했다는 사연이 있었다는데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볼 수 있을까요?
강수진 성우: 사실은 인디게임 '어이쿠, 왕자님'은 지인을 통해서 알게 됐는데요. 그 BL이라고 하잖아요? 남남커플을 소재로 하는 여성향 게임이었거든요. 굉장히 매니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과감하게 시장 개척이라고나 할까요? 게임 속의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배경을 가지고 멀티 유즈 형태의 '오디오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기자: 실제로 그 개발자분이 남겨주신 일화를 보면 개발하다가 지쳐서 제주도에 힐링여행을 갔다가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는 내용이 적혀있는데요. 이게 어떻게 보면 제일 유명한 성우분이 먼저 직접 전화를 걸어와서 '저, 그거 하고싶습니다'라고 하는 게 굉장히 비현실적인 상황이잖아요? 먼저 제안을 하시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거나 그런 건 없으셨나요?
강수진 성우: 오히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부담이 없었습니다. 다만 그 당시만 해도 BL이라는 장르의 연기가 분명히 쉽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만들었던 오디오 콘텐츠는 좀 타협을 해서 수위를 좀 낮추긴 했었죠.
기자: 근래 출연한 작품들을 보면 파워레인저(슈퍼전대) 최신작인 붐붐포스의 최종보스 '와일드 스핀도'나 블리치 천년혈전편의 '히라코 신지'처럼 독특한 캐릭터로 캐스팅되는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해당 캐릭터로 지명되거나 혹은 오디션에 임하실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강수진 성우: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서 '와일드 스핀도'나 '히라코 신지'처럼 개성 넘치고 카리스마 있는 그런 역할들을 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는 것 같아요.
팬서비스로 즉석에서 녹음해주신 '블리치 리버스 오브 소울즈' 게임 내에서의 히라코 신지
사실 엠바고 때문에 여기서 당장 공개하기는 힘들지만 최근에도 또 다른 화제성 있는 캐릭터를 녹음하긴 했어요. 아마 나오면 굉장히 놀라실만한 캐릭터고 '쿠키런: 킹덤'에서도 악당인 '쉐도우밀크 쿠키'를 연기했는데요. 이런 배역들이 오디션보다는 직접 섭외를 통해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요.
오디션을 봐야 하는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나이를 먹고 경력도 쌓이고 있으니 '주인공, 청춘, 10대, 열혈남아를 소화하는 데에는 부담이 있을 수도 있다'라고 제작자분들이 판단하시는 게 아닐까 '주인공으로 쓰기엔 올드해, 근데 버리긴 아까워' 이런 느낌 아닐까요? 하하하
기자: 그런데 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치고는 '이누야샤'의 정식 후속자인 '반요 야샤히메'에서도 녹슬지 않은 주인공, 소년 연기를 보여주셨잖아요?
강수진 성우: 그런건 또 제가 원래 하던거니까요(웃음), '이누야샤'나 '남도일'이나 '루피'는 20년 넘게 제가 연기해온 캐릭터니까 계속 캐스팅이 유지되고 있지만, 신작의 주인공 역할은 거의 없어요.
사실,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 이상의 새로운 세대 감각을 가진 매력적인 후배 성우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저 스스로도 주인공 같은 중요한 배역을 지속적으로 가져가고 싶다는 욕심도 없고요.
그래도 제 위치에서 제가 해야 할 역할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영역에서 평가받고 인정받는 것이 제 목표가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어떤 배역이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현 실태에 대한 부분인데 우리나라 제작 현장에서는 제작비의 절감을 위해서 이런 역할들을 가져갈 수 있는 중견 성우들이 꽤 있는데도 그 경력에 걸맞은 가치와 능력이 있는 성우들의 캐스팅이 많지 않아요.
툭 터놓고 얘기하면 인건비가 싸게 나오는 후배 성우들에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느낌의 연기를 요구하고 있죠. 그런 풍토가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같은 중견 성우에게 역할을 주는 제작자와 PD의 마인드에 저희는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기자: 실제로 해당 내용은 좀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르는 것 같아요. 실제로 일본 성우분들 중에서는 개런티 감당이 안되서 출연료가 한편이 아니라 대사 한줄 단위로 책정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처음 '원신'에 출연하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들었을때 '혹시 너무 비쌀 것 같아서 PD분들이 못 불러주시는거 아냐?'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죠.
강수진 성우: 하하하,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네요
기자: 사실 해당 이슈 외에도 성우님이 종종 토크쇼나 인터뷰에서 이야기하시는 부분을 보면 나이를 먹어가면서 예전에 주로 하시던 역할인 '열혈남아' 계통의 캐릭터 '슬램덩크'의 '강백호'나 '가오가이거'의 '가이' 소화가 조금 어렵다는 내용이 있어요. 이러한 부분도 혹시 영향을 끼쳤을까요?
강수진 성우: 뭐 '목소리를 다치는 것이 아닌가'와 같은 물리적인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해당 배역들은 감성적으로 연기를 하면서 저에게 있어 굉장히 신나는 경험으로 남아있어요. 연기를 하는 과정에서 해소되는 부분도 있었고요. 그래서 체력적으로 어려움을 느낄 지언정 캐릭터 연기 자체가 어렵다는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굉장히 어렵게 느껴졌던 것은 다른 캐릭터였는데요. 애니메이션도 아니고 게임도 아닌 TV외화 시리즈였던 '셜록'의 '짐 모리어티'였죠. 드라마 캐릭터라서 사람이 직접 연기하는 배역인데 해당 캐릭터의 경우 전례가 없던 빌런이었죠.

KBS에서 방영된 셜록 시즌 1의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 "인간은 누구나 죽어!"
저도 예나 지금이나 굉장히 많은 작품들을 보고 있지만 처음 접하는 독특한 스타일의 빌런이었고 영국 BBC 드라마에서나 구사할 수 있는 굉장히 스타일리시한 캐릭터였지만 연기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캐스팅 과정에서도 PD조차 두손두발 들고 '저는 답이 없으니, 선배님께서 알아서 해주세요! 선배님만 믿고 맡기겠습니다'라면서 떠넘기듯이 들어온 배역이었어요.
기자: 그럼 PD분께서 캐릭터 해석에 대한 부분을 전적으로 성우에게 완전히 일임한 건가요?
강수진 성우: 그렇죠. 그래서 그 배역의 연기를 위해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를 황폐하게 살았던 기억이 나요. 사람들도 일부러 잘 만나지 않고 만나더라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약간 삐딱한 자세로 임하는...
소위 말하는 메소드 연기를 위해 몰입하려고 애썼죠. 굉장히 어려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기자: 그럼 반대로 좀 재미있었던 사례를 들어주실 수 있나요?
강수진 성우: 뭐, 다 재미있었죠. 굳이 따지면 타카하시 루미코 여사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이누야샤', '란마 2분의 1', '메종일각'이라는 3가지 작품의 주인공을 연기했었는데 그 캐릭터들과 제가 성격적으로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기자: 제가 알기로는 그 작품 남자 주인공들이 모두 호색한 기질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말이죠. 혹시 성우님도 그런 일면이 있으신 건가요?
강수진 성우: 호색한... 호색한까지는 아니고 그냥 여자를 좀 좋아하는 것뿐이죠.(웃음)
기자: 질문 화제를 좀 바꿔서, 이제 '블리치 천년혈전편' 시즌 2에 해당하는 '결별담'이 치지직 플랫폼에서 같이 보기 콘텐츠를 진행하잖아요?
사실 시즌 1때도 같이 보기 콘텐츠 진행하시면서 강수진 성우님이 맡은 배역인 '히라코 신지' 관련으로 원작에는 나온 적 없는 대사 "호로화, 제어하고 싶제?" 이런 코믹한 팬서비스 더빙을 해준 것이 기억나는데요.
이런 식의 코믹한 방향의 합성. 조교. 왜곡 더빙 같은 문화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계신지 들어보고 싶어요.
강수진 성우: 관심을 가지고는 있는데, 일단 세대적으로 감성이 다른 부분이 있다보니 이를 빨리빨리 캐치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주변에 있는 스탭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죠. 소위 말하는 MZ세대의 밈과 문화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제가 생각하기에 너무 최첨단을 달리는 최신 유행을 무턱대고 쫓아가는 것은 역효과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한발 늦은 뒤따라가기' 이런 것들이 오히려 저에게는 더 신선하고 재미있을 것 같아요. 뒷북치기지만 열심히 배우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직접 녹음을 요청한 오리지널 용기병메이커 '인성타니스'
기자: 그럼 촬영 스탭들이 알려준 콘텐츠 중에서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느껴진 것들은 무엇이 있었나요?
강수진 성우: 예전에 유튜브 채널 콘텐츠로 담아보려고 했다가 실패했던 것이긴 한데 탕후루 챌린지라든지, 요새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지나간 챌린지를 다시 하는 그런 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한번 다시 도전해볼까 그런 생각은 있습니다.
기자: 질문 화제를 바꿔볼게요. 요즘은 TV가 아니더라도 게임, OTT 등 다양한 방면에서 더빙 콘텐츠를 접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함께 생겨난 팬 문화가 어떤 콘텐츠가 더빙이 들어온다면 이 캐릭터에 이 목소리가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가정하는 '가상 캐스팅' 문화인데요.
이런 부분을 통해 원래는 잘 몰랐지만 관심을 가지게 된 작품이나 캐릭터가 있었나요?
강수진 성우: 음... 사실 신작 관련해서 제가 딱 무엇가를 하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게 딱 집어 있지는 않아요.
다만 하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못하게 돼서 아쉬웠던 캐릭터는 좀 있었죠.
기자: 말씀하신 부분은 혹시 계속 녹음하고 싶었는데 콘텐츠가 방영 중단되거나 수입이 불발됨을 의미하시는 것일까요?
강수진 성우: 아니요. 방영은 했는데 캐스팅이 바뀐 사례죠.
기자: 혹시라도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작품인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강수진 성우: 괜찮아요. 이미 다 공개된 내용이긴 한데 몇년 전에 '루팡 3세'의 새 시즌을 방영한 것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루팡 3세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컸어요. '예전에 했던 배역이라서, 반드시 내가 해야 된다'는 마인드는 아니고
제가 어렸을 적에 일본 만화책이 제대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금서 취급을 받던 시절 해적판 필사본까지 친구들끼리 몰래몰래 돌려보면서 굉장히 재미있게 봤던 작품이 '루팡 3세'거든요

팬티 한장 남기고 단숨에 옷을 벗으며 뛰어드는 그 유명한 '루팡 다이브' 장면도 녹음을 했었다고
청소년기의 성적 호기심을 잔뜩 충족시켜 줬던 너무 재미있게 봤던 작품이라서 성우가 되고 나서 그 애니메이션을 제가 녹음을 하게 되어 너무 즐겁고 재미있게 했던 기억이 남아있는데, 그 후속 시리즈가 수십년 만에 제작이 된다고 하니 '내가 해당 배역을 연기했던 것도 있지만, 이런 사연이 있으니 오디션의 기회라도 줬으면 좋겠다'라고 어필했는데 오디션조차 보지 못했죠.
뭐 이런저런 방송사의 사정도 있었고, 그래서 굉장히 아쉬웠던 기억이 있어요
기자: 그래도 재작년에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경우 오랜만에 다시 '강백호' 배역을 맡게 되셨잖아요? 어떤 과정을 거쳐 강백호를 연기하게 되셨나요?
강수진 성우: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경우 거의 25, 26년 만에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개봉이 됐잖아요? 솔직히 저는 마음을 비우고 '와, 이게 다시 제작됐다고?', '빨리 들어왔으면 좋겠다', '관객으로서 보러 가야지' 이런 생각으로 관심만 가지고 있었지 내가 다시 배역을 맡고 싶다는 욕심은 없었어요.
사실 일본에서도 더빙과 관련하여 캐스팅이 전부 바뀌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저에게 오디션 섭외가 왔고 그 오디션을 통해 다시 '강백호'를 맡게 됐죠.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기존 멤버 중에서는 저만 남고 나머지가 전부 바뀌니까 굉장히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었죠. 너무 영광이고 기쁨이 컸지만 그에 비례하여 제가 느끼는 부담도 굉장히 컸죠. 그나마 다행이었던건 주인공이 백호가 아니었다는 부분이죠.(웃음)
만약 주인공이 백호였다면 부담이 더 컸을텐데, 그래서 실제로는 부담을 조금 덜어내고 연기에 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기자: 사실 주인공이 아니라고는 했어도 산왕전에서 백호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했잖아요? 패배 의식에 찌들어가는 팀원들을 다 일으켜세우고 멘탈을 회복시켜주면서 안면 슛으로 골을 넣는 등의 깨알같은 활약도 많았고요.
사실 원작을 본 입장에서도 굉장히 궁금했던 부분 중 하나였는데요. 가장 유명한 그 마지막 장면과 대사 있잖아요? 버저비터 점프슛을 쏘면서 나온 '왼손은 거들 뿐' 그게 극장판에서는 나오지 않았는데 이 부분을 녹음하면서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그 대사를 실제로 녹음까지 했지만 최종적으로 빠졌다는 것이 진실
강수진 성우: 그 유명한 '왼손은 거들 뿐'이라는 '사람들의 머릿 속에 뇌리와 가슴에 깊이 각인된 그 장면과 그 대사를 극장판에서는 왜 생략했을까'에 대해 사실 녹음을 담당하는 PD분과 저희 성우진들도 꽤 긴 시간을 고민했었던 것 같아요.
사실 비하인드 스토리에 가깝긴 한데 당시에 '왼손은 거들 뿐'이라는 대사를 녹음을 했었어요. 분명 일본어로 녹음된 오리지널판에서 그 부분이 빠져 있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슬램덩크 팬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그 추억의 장면에서 '왼손을 거들 뿐'이라는 대사가 들어가는게 옳지 않나 싶어서 일단 PD와 고민 끝에 녹음은 했죠.
최종적으로 그 대사가 들어갈지 말지는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안 넣는 게 낫겠다는 어필을 했어요. 팬들의 가슴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추억의 장면의 그 대사를 관객분들이 직접 할 수 있도록 관객들의 목소리로 남겨두는 게 나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빠지게 됐고 그게 원작자가 의도했던 바인 만큼 극적인 효과가 더 컸다고도 생각해요.
기자: (대충 김전일 톤으로)이렇게 또 수수께끼가 모두 풀려버렸습니다. 다른 주제로 넘어가보려고 하는데요.
강수진 성우님의 필모그래피 전체에 관심을 두는 팬들은 '에테몬'같은 나사빠진 개그 캐릭터나 '하이델룬', '짐 모리어티'처럼 극악무도한 악역도 많이 하고 있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게임, 애니메이션, 외화를 접하는 많은 소비자분들이 'TV를 틀면 높은 확률로 등장하는 주인공 전담 성우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거든요.
이 부분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한 번 들어보고 싶어요
강수진 성우: 분명 그동안 해왔던 캐릭터들이 주인공이 많긴 했죠, 가끔씩 조연도 악역도 소화했지만 아무래도 주인공을 많이 했던 것은 사실이라 주인공 전담 성우라는 닉네임이 분명히 있지만, 그건 이제 과거의 추억이죠.
그리고 지금 제가 주인공을 하고 있는 것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지속적으로 제작되는 스테디셀러 '명탐정 코난'의 남도일이나 '원피스'의 루피와 같이 장수 IP의 주인공을 하고 있을뿐 신작의 주인공을 맡을만한 기회는 거의 없어요. 저 또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요.
일단 저는 주인공을 많이 연기해봤지만 주인공만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주인공이 되는 것을 추구하지도 않아요. 주조연이 중요하기보다는 저의 역할이 크든 작든 그 작품속에서 기억에 남는 역할을 연기하고 싶어요.
예전에 극장용 애니메이션 '하이큐!! 승자와 패자'에서는 정말 지나가는 역할의 캐릭터로 녹음을 한 적도 있거든요. 큰 롤은 아니지만 그런 역할도 저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농담삼아 요즘엔 이런 이야기도 해요. 역할이 크지도 않은 캐릭터인데 '연기가 정말 재미있고 개성있다, 그런데 이걸 강수진이 연기했다고?'라고 느껴지는 연기를 최근 집중적으로 연습하고 있다고 말이죠.
기자: 이거는 조금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이제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AI를 활용한 음성 녹음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고 기존 성우님들이 연기했던 내용과 레퍼런스들을 학습시켜가지고 TTS처럼 활용하는 것도 있거든요.
이게 일각에서는 성우라는 직업의 활동 영역을 제한하고 한계가 점점 좁아질 수 있다는 의견으로도 확대되고 있는데 그래도 실제 성우들이 생각하는 그들의 연기에 담긴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지를 한번 들어보고 싶어요.
강수진 성우: 저는 오히려 반문하고 싶습니다. 그런게 있을까요?
게임업계 쪽에서 일하시는 만큼 AI에 대해서는 저보다 잘 아시겠지만 과연 AI라는 문명의 이기가 과연 인간에게 끝까지 운명의 이기일까요?
AI가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유익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로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고 도태시킬 수도 있는 동전의 양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성우라는 직업도 분명 그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죠. 예전에는 '아무리 TTS와 AI가 발전한다고 해도 인간의 희노애락 오욕칠정 백팔번뇌를 다 디테일하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지만 불과 몇 년 만에 그것이 가능하다고 증명이 됐잖아요. 그렇가 AI가 인간의 모든 것을 대체한다면 그것을 막을 길이 있을까요?
때문에 AI를 개발한 사람이 노벨상을 탄다고 한다면 AI와 인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도 노벨상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어려운 문제라는거죠.

아직 성우 본인도 시대의 흐름을 열심히 따라가며 팬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다만, 저는 이제 희망을 가지는 게 있다면, 비단 성우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AI의 이점을 찬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만큼 인간의 순수성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매달릴 수 있는 것은 인간적인 감정을 담아내는 목소리를 좋아하는 팬분들이다.
AI의 목소리를 좋아하는 팬들도 분명히 생기겠지만, 인간성을 향유하고 싶은 분들이 우리에게 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에요.
결국 거기서 AI라는 문명의 이기와 인간의 순수성의 타협점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게 어떤 방향이고 어떤 형태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기자: 너무 심오하고 철학적인 답변이 나와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가벼운 질문으로 전환해볼게요. 얼마 전에 SNS를 통해 '란마 1/2 리메이크판'의 감상평을 남겨주신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일본판 성우인 '야마구치 캇페이'가 강수진 성우님처럼 남자 란마 역을 이전에 연기했었는데 여전히 똑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부분에 자극을 받고 있다고 말이죠
하지만 저는 강수진 성우님도 꽤 오랫동안 활동하셨지만 목소리와 연기력, 기량을 잘 유지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지금까지 꾸준함을 유지하는 비결과 앞으로의 목표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강수진 성우: 유지하는 비결을 물어보신다면, 사실 물리적인 목소리를 유지하는 것은 약을 먹든 어떻게든 의학의 힘을 빌리면 최대한 연장할 수 있다고 봐요
왜냐하면 신체기관 중에 성대 가장 노화가 적거든요. 그래서 건강 관리만 잘 한다면 충분히 목소리 유지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농담 삼아서 '제가 노화가 크게 와서 무릎과 온몸의 관절이 닳아없어지더라도 목소리는 그대로일 수 있다'라고 하거든요.
다만 중요한 것은 감성적으로 연기하는 그 감각을 읽지 않고 늙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런 부분이 훨씬 어렵게 느껴졌거든요.
'야마구치 캇페이'라는 성우를 제가 높게 평가한 것도 이런 부분에서였어요. 란마 1/2 리메이크판을 봤는데 그 감성이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어요.
뭐 사실 나이도 저랑 동갑인 걸로 알고 있고 데뷔 시기도 비슷하고 같은 배역을 연기하거나 성우로서 추구하는 소신도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내적 친밀감이 굉장히 깊거든요. 그래서 그 연기를 다시 보면서 존중하고 박수를 치고 있는 중입니다.
본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감성적으로 퇴화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저 또한 여러가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음악이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세대, 어린 세대들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기보다는 관심을 가지자.
세대가 분명히 다르기에 무조건적으로 추종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내가 늙지 않기 위해서 감성적으로 늙지 않기 위해서 차이를 인정하고 벽을 쌓지 말자 그리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기자: 아쉽게도 인터뷰를 마무리해야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팬분들에게 꼭 남기고 싶은 한마디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강수진 성우: 게임조선이니까 아무래도 게임 유저분들이 많이 보실 것 같아서 아까도 드린 말씀이지만, 아시다시피 제가 게임 관련 IP에 많이 참여했고 게임 유저분들도 저의 연기를 많이 좋아해주고 있음에도 제가 실질적으로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로서의 공감 부분이 많이 약한 것, 깊이 교감하지 못하는 부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실토하며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하지만, 제가 참여하는 게임의 세계관 스토리, 캐릭터를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유저분들이, 플레이어분들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지 고민을 하고 최선을 다해 연기하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이해해주고 계신 분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고요.
제가 게임을 그렇게까지 많이 플레이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저를 많이 성원해주시고 관심 가져주시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원에 보답하는 연기를 계속 열심히 해나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녹슬지 않는 감성으로 멋진 연기를 계속해주시기를
[신호현 기자 [email protected]] [gamechosun.co.kr]